신주쿠 니시구치 오모이데요코초의 역사

1950~51년 무렵 신쥬쿠 니시구치 오모이데요코초의 역사를 말하려면 우선 종전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6년경, 전후 잿더미가 된 서쪽 출구 주변은 전쟁의 잔해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 무렵 역 앞에는 의류, 구두, 비누 등 생활 잡화를 파는 노점상과 어묵, 찐 고구마, 팥죽, 튀김, 해초 쓰쿠다니, 헌 책을 파는 갈대 발로 만든 포장마차가 3~40채 줄지어 있었으나 화재로 전소했습니다. 그 후 판자 하나로 칸막이를 세운 노점상 시장, 통제경제시대의 암시장인 ‘럭키 스트리트’가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오모이데요코초의 전신입니다. 당시, 전쟁 중에 집이 불탄 가족들이 의지한 친척이나 지인의 집이 세타가야, 스기나미, 네리마 등에 있었고 전쟁 중에도 이 지역의 인구는 10% 정도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신주쿠는 그런 지역의 교통의 중계 지점이자 사람과 물자가 유통되는 터미널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주쿠에 모이고 노점상은 저마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p>

1947년 무렵은 통제 물품에 대한 단속이 엄격했습니다. 라면이나 이마가와야키에 사용하는 밀가루 등이 이에 해당하여 장사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통제 물품이 아닌 것은 미국 주둔군에게서 조달한 소나 돼지의 곱창 등이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상점 대부분이 곱창구이 영업을 시작하여 당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현재도 60점포 정도의 음식점 중 절반 이상이 야키토리가게 또는 곱창구이가게입니다.

상가 형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판자 하나로 칸막이를 세운 구조입니다. 현재도 서로 벽을 맞댄 구조의 상점이 많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들어 ‘야키토리 카바레’라는 가게도 생겼습니다. 이 가게에서 손님들은 야키토리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한껏 멋 부린 여종업원들이 접객 서비스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광경이죠.

1959년 무렵에는 에이단선 연장 계획, 재개발 등으로 인한 터미널 건설 등이 실시되었습니다. 당시 코우슈카이도부터 오메카이도까지 줄지어 있던 약 300채의 상점이 불법 점거를 이유로 퇴거 조치되어 지금의 팔레트 빌딩(신주쿠 니시구치회관)에서부터 오메카이도까지의 상점이 남았습니다.
그 후에도 신주쿠 니시구치 ‘오모이데요코초’는 쇼와시대의 맛과 따스한 인정을 간직하고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1950~51년경의 신주쿠역 서쪽 출구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참고 문헌: 「신주쿠 니시구치회관 설립 40주년 기념지」, 「야키토리 행진곡」
상기 내용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2021년 4월 현재를 기점으로 하여 가필 수정을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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